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샤플앤컴퍼니 이준승 대표-
업무 대부분을 노트북, 스마트폰으로 하는 사무직과 달리 현장직에선 디지털화가 더디다. 현장직이란 매장, 생산·제조, 시설점검 등 이른바 '책상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직군을 말한다. 이들은 아직도 재고 상황이나 시설 점검 여부 등을 종이에 기록하곤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원 출퇴근 관리가 잘 안되고, 인수인계가 원활하지 않아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준승(49) 샤플앤컴퍼니 대표는 11년간 해외 매장 관리직으로 일하며 겪은 어려움을 바탕으로 창업했다. 제대로 출퇴근도 하지 않으면서 부정 급여를 받는 유령 직원 사태까지 겪게 되자, 해결책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 대표에게 샤플앤컴퍼니 창업기를 들었다.
샤플앤컴퍼니는 현장직 업무 협업툴 '샤플(Shopl)'과 시설 점검 솔루션 '하다(HADA)'를 운영한다. 샤플은 직원과 관리자가 출퇴근을 기록하고 업무 현황을 확인하며 소통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하다는 직원이 시설 점검 내역을 입력하는 앱이다. 직원과 관리자는 시설 전체 점검 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샤플과 하다는 디자인이 직관적이어서 별다른 교육이 필요 없다. 이 대표는 개발 초기부터 디지털 수단에 익숙하지 않은 현장 직군을 고려해 단순한 사용성에 집중했다. 하다는 회원가입 과정도 없다. 현장직을 타깃으로 간결하게 만들었더니 오히려 찾아주는 곳이 늘었다. 사무직이나 공공기관 등 처음엔 이 대표가 고려하지 않았던 곳에서도 샤플과 하다를 찾는다.
샤플앤컴퍼니는 올해 5월 일본에서 열린 ‘디캠프 디데이’에서 우승했다. 디캠프 디데이는 종신고용과 장기 근무 문화로 인해 ‘스타트업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일본에서 국내 스타트업의 진출을 위해 개최된 대회다. 샤플앤컴퍼니는 본선에 참가한 10개 기업 중, IT 기술 도입에 소극적인 일본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 받아 우승했다. 이 밖에도 샤플앤컴퍼니는 2022년 아기유니콘 기업 선정, 2023년 중소벤처기업부 창업 활성화 표창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2002년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2004년 제일기획의 중국 디지털 자회사 ‘펑타이’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해외 매장에서 직원 관리를 맡았다. 중국, 대만, 홍콩, 동남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일했다. 해외 매장 관리자로 근무하며 어려움이 많았다.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요?
“사무직과 다른 업무 특성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었죠. 현장에선 매장 재고 조사, 시설 점검, 매뉴얼 배포 등 반복되는 업무가 많습니다. 이런 특성을 고려한 협업 수단은 없어서 대개 종이에 기록하거나 엑셀에 정리합니다. 근속연수도 짧은 편이라 새 직원이 들어오면 제대로 된 인수인계 없이 즉시 업무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고요. 현장에서 사용하는 PC나 휴대폰은 대부분 저사양이라서 기존 협업 애플리케이션이 잘 작동하지 않는 문제점도 있었어요. 현장직 맞춤 업무 협업 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샤플앤컴퍼니 이전에도 창업 경험이 있나요?
“나름대로 여러 번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첫 창업을 했어요. 육상 트랙 한 바퀴를 도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랩타임 시계 사이트를 만들었죠. 마라톤 마니아였거든요. 당시 신입사원 월급의 2~3배를 벌 정도로 수익이 나쁘지 않았어요. 안타깝게도 이후 비슷한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이밖에 비싼 대학 교재를 학생끼리 싸게 공유하는 플랫폼, 한국 육아 정보를 전 세계인이 공유하는 플랫폼도 운영했어요. 일부 사업은 매각하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냈어요. 직장인이 되면서 사업과는 거리를 두게 됐죠.”
이 대표는 앞선 세 번의 사업 경험과 11년간의 직장생활을 토대로 새로운 창업을 결심했다. '현장직 맞춤 업무 협업 툴'로 창업 아이템을 찾은 그는 탄탄한 수익 구조부터 설계하기로 했다.
아이디어가 참신하면 수익은 따라오지 않나요?
“아이디어의 기발함도 중요하지만, 먼저 경험한 사업에서 ‘탄탄한 수익 구조’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이전 사업은 수익 구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지속하기 어려웠습니다.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번에는 고객과 MOU(양해 각서)를 먼저 체결해 수익 구조부터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 현장에 찾아가 '현장직 맞춤 업무 협업 수단'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추후 저희 서비스를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개발에 들어간 거죠.”
개발 과정은 어땠나요?
“애플리케이션 하나 만드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 머릿속에 아이디어는 있는데 서비스로 현실화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개발 분야를 잘 모르는 채 창업한 걸 부끄러워하며 3년을 보냈습니다.”
샤플앤컴퍼니는 3년간 개발 끝에 2018년 10월 샤플을 내놨다. 바로 다음 해 유료 서비스로 전환했다. 서비스 출시 5년도 안 돼 국내외 100여개 회사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직원과 관리자가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하나요?
“직원은 출근 후 샤플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얼굴을 인식해 출근을 인증합니다. 업무 체크리스트 기능을 사용하면 오늘 업무 계획이 관리자에게 자동으로 공유됩니다. 관리자는 직원 출근 현황과 업무 진행 생황을 샤플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요. 사내 메신저 기능도 있어요. 매뉴얼을 배포하거나 업무 지시를 쉽게 할 수 있죠. 더이상 A4 용지에 수기로 출근 여부, 업무 현황을 적지 않아도 됩니다.”
수익 모델은 어떻게 되나요?
“월 구독료를 받습니다. 월 2000원부터 1만원대 이상 요금제까지 지역별, 기업별로 필요한 기능 수에 따라 다릅니다. 국가마다 다른 현장 직원의 1시간 시급을 월 사용료 기준 가격으로 책정하고 있어요.”
어떤 기업이 샤플을 이용하나요?
“삼성전자, 현대리바트, 쌤소나이트, 이랜드, 롯데백화점 등 국내외 글로벌 기업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인천공항, 한강사업본부 등 공공기관도 저희 서비스를 이용해요. 카페 노티드 등 여러 음식점을 운영하는 GFFG, 닌텐도 중남미와 같은 고객사도 확보했어요. 샤플은 2024년 7월 현재까지 대기업 고객 이탈률이 0%예요.”
어떻게 대기업 고객 이탈률 0%라는 수치가 가능한가요?
“샤플이 현장직 근로자를 위한 필수 업무 수단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에요. 현장직 근로자 1명이 샤플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빈도가 하루 30번 이상입니다. 애플리케이션은 한번 익숙해지면 다른 것으로 바꾸기 어렵습니다. 이탈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죠.”
샤플 성공 이후 2022년 현장 시설 점검 앱 '하다'를 내놨다. 시설에 부착돼 있는 QR코드를 카메라로 비추면 시설 점검 내역을 입력하고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엘리베이터, 인천국제공항 화장실, 한국 도심공항 버스 등 다양한 공공시설 관리에 '하다'가 쓰인다.
하다(HADA)를 출시하게 된 계기는요?
“샤플 출시 이후 ‘현장 시설 점검 디지털화’를 원하는 분들이 늘었어요. 종이 점검표에 일일이 손으로 기록하는 것이 불편해 보여 만든 서비스입니다. 아직도 건물 화장실에 보면 종이로 된 점검표가 많이 보여요. 이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 '하다'입니다. 샤플과 마찬가지로 구독료를 받고 있어요."
매출은요?
“올해 매출은 30억원으로 예상돼요. 작년 대비 200% 성장한 수치입니다. 2023년 4분기부터 월 영업이익이 발생하고 있어요. 올해 예상 영업이익률은 30%예요. 스타트업으로서 재무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샤플앤컴퍼니를 경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코로나 시절 많은 고객사가 구조조정을 겪을 때 저희도 가장 힘들었어요. 매장이나 시설 관리직은 재택근무 등 유연하게 대처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다행히 장기적 성장을 지지하는 투자자들 덕분에 단기 매출보다는 기능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죠."
총 4번의 창업 경험이 있는데, 어떤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나요?
“창업은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아니라 운일기구(運一技九)인 것 같습니다. 창업자가 할 수 있는 건 버티기뿐입니다. 창업은 버티면 이기는 게임이고, 버티는 게 창업자의 역량입니다.”
샤플앤컴퍼니는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이다. 2024년 3월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일본은 늦게나마 근로 현장 디지털화를 위해 이와 관련한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샤플앤컴퍼니가 일본에서도 성장할 기회다.
일본 고객 확보를 위한 전략이 있나요?
“일본에서 먼저 창업한 멘토분들이 공통적으로 해 주신 말은 ‘결국 한 땀 한 땀 해야 한다’입니다. 현지 대행업체를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사내에 있는 일본 담당 직원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해외 스타트업 진출에 보수적이에요. 일본 본사와 계약은 쉽지 않지만, 해외 매장 공략은 어렵지 않죠. 저희가 일본에 있는 닌텐도 본사가 아닌, 닌텐도 중남미 매장과 먼저 계약했던 것처럼요. 현지 매장을 시작으로 본사 고객 확보까지 나아갈 예정입니다.”
앞으로 계획은요.
“지자체의 시설 점검 디지털화를 계획 중이에요. 올해 행정안전부의 지원으로 청양군에 있는 충남도립대의 시설점검 디지털화에 지원했는데요. 지방 인구와 예산은 줄고 있지만, 지자체가 관리해야 하는 지역과 시설은 그대로예요. 디지털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저희가 디지털 소외 지역 또는 계층을 위한 해결책이 되고 싶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요."
바삭한 경제 이소연